싱가포르에서 1년을 조금 넘게 지내며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확성기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장면입니다. 오차드거리 한가운데를 거슬릴 정도로 굉음을 내며 달리는 람보르기니는 자주 봤지만, 확성기를 틀고 있으면 길거리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고, 전단 같은 것을 나눠주거나 피켓을 들고 있으면 식당 홍보를 하는 알바들입니다. 한국에서는 직장이 있던 서대문에서 학원이 있던 종로2가까지 걸으면서 꽤 많은 집회시위를 봤던 것 같은데요. 한국은 집회시위가 신고제로 이뤄집니다. 누구든지 집회시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관할 경찰서장에게 '누가 언제 어디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시위를 하고자 한다'라고 신고만 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런 권리행사가 가능해집니다.
싱가포르는 집회시위가 허가제로 이뤄집니다. 법률에서 정하는 요건 기간 내에 관할 경찰서에 집회시위를 하고자 한다고 신고를 하면, 심사를 거친 후 할 수 있다와 없다를 통보하죠. 예를 들어 누군가 정부 정책 비판을 사유로 집회시위를 요청했는데, 그것이 오차드 거리 한가운데를 행진하는 것이라고 하면 교통 정체를 이유로 허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는 1960년대 중국계와 말레이계의 충돌로 36명의 사망자가 나온 사건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말레이에서 독립 직후로, 나라 밖으로는 말레이와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가 압박하고, 대내적으로는 다른 인종과 종교간의 갈등에 범죄조직 공산주의자들까지 혼란요소가 많았다고 하네요. 뭔가 강경자세로 휘어잡고 나라의 기틀을 잡을 필요를 느꼈던것 같습니다.
싱가포르 홍림공원에는 2000년 9월부터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라는 곳을 만들어 누구나 발언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클라키와 차이나타운 중간에 있으니 서울의 여의도 공원 같은 요지입니다. 누구든지 정부를 비판하던지,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전등록을 하고 마음껏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여기에서도 금지되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인종과 다른 종교에 대한 비판 내지 비난입니다. 다민족 다종교로 구성된 싱가포르인지라 이런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는 매우 엄격하게 금지된 것 같습니다. 할랄단지를 설치한다고 기독교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북을 치고 난리를 친다거나, 전철역에 사찰 이름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집회시위를 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죠.
최근에 있었던 주요 집회시위 사례로는 2013년 리틀인디아 건이 있는데, 싱가폴 내에서는 이를 집회시위가 아닌 폭동(Riot)으로 분류를 하더군요. 리틀 인디아 지역에서 중국인이 운전하는 버스에 인도인 노동자가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인종간의 갈등과 노동자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싱가포르 정부의 조사 위원회에서는 해당 사고는 음주자들로 인한 우발적인 사고였으며, 이에 대한 경찰의 대응 등은 적절했다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리틀인디아 내 식당 등에서는 주말, 휴일, 휴일전날 저녁 등의 기간에 알콜 판매가 금지되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지만, 리틀 인디아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 입장에선 참 고마운 소식이겠죠.
리틀인디아 내 폭동 사건 대처에 대한 내용은 싱가폴 정부 웹사이트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폭동 현장에 도착한 싱가폴 경찰 기동대.. 다음 포스팅에서는 싱가폴 경찰 기동대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네팔인 구르카 부대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즐거운 한주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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