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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싱가포르에 살며 한국에서 30년 살면서 본 것보다 더 많은 람보르기니를 보며 살고 있다. 내 남은 인생 월급을 다 모아도 살 수 없는 차를 모는 저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 주말에 공원을 걷다 보면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의 인근 국가에서 온 가정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고 수다를 떨며 노는 풍경을 자주 본다. 각자의 고향에 두고 온 자녀들을 위해 그들은 한달에 40-50만원의 돈을 받으며 가정부로 살고 있다.

 

중동에서 파견 온 동료의 집에 놀러 갔다, 그 집 월세가 2천만원 정도 된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이 집을 지은 인도 혹은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한달에 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아 3년을 모아도 이 집 한달 월세를 낼 수 없다. 얼마 전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한 트레이닝을 진행하다, 한 참가자가 자신의 집이 멀어 매일 일찍 교육을 마쳐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 친구가 사는 나라엔 무선인터넷도 쉽지 않고, 자신의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을 여건이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이 좋지 않던 나는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려고 했고, 이런저런 상황이 맞아 간 대학이 취업문제까지 해결해 준 덕분에 지금까지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외국에 나온 후 한국의 경찰 급여가 나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우리 경찰을 얘기할 때 ‘박봉에도 불구하고’라는 관용구를 안 쓰게 된다.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있는 정도의 자산은 아니지만, 매달 운동, 어학, 독서를 맘껏 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고,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에게 굳이 밥이나 술을 얻어 먹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온전히 살게 된 것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살지 못한 사람들 역시 마땅히 그들이 당할 일을 당하는 것일까?

 

무선 인터넷과 컴퓨터가 마땅치 않아 매일 먼길을 오가는 그 경찰과, 이국에 와서 땡볕에서 일하며 한달에 40-50만원을 손에 쥐는 이들에게, 어린 시절 내 주위 어른들은 ‘더운 나라에 살아 게을러서 못 산다’라고 너무 명료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족들이 모두 죽고 피부병으로 가려워 하는 욥을 향해 ‘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런 고통을 당한다’ 라고 쉽게 말했던 그 친구들처럼.. 오히려 한국 교회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고, 못 살고 아픈 것은 하나님의 징벌이라며, 우리 교회는 배고프고 아픈 이들을 죄책감으로 몰아 붙이고 있는 것 아닌가?

 

책의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누리는 부유함을 당연히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능력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오히려 나는 운이 좋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조금 늦게 일하러 온 일꾼에게도 같은 삯을 준 포도원 이야기를 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라고 했던 예수의 비유가 생각난다. 이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보다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