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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통닭집 상권을 분석하다가..

책상을 빼버릴 수 있다는 위협을 받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한숨 퍼잔 후에 퇴직후 삶을 설계하기 위해 동네 통닭집 상권을 분석하고 다녔다.

네네 치킨의 파닭, 굽네 치킨의 로스트 치킨, 비비큐의 케이준스타일 치킨, 보드람의 클래시컬한 치킨, 동네 참나무 바비큐 치킨 등..

뭔놈의 닭집이 사방에 있고, 이렇게 닭을 튀겨대는데, 그 많은 닭들은 어디에서 오는건지...

닭이 그냥 냅두면 30년을 산다는데, 길어봐야 15년을 사는 개보다 훨씬 반려동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제주도를 떠나기 직전, 부대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할까 하고, 동네 오일장에 가서 토종닭 세마리를 사왔다. 일부 이처 시스템을 꿈꾸던 나답게 숫놈 한마리와 암놈 두마리였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부대 뒤뜰에 나와 땅을 파고, 바닥에 붙은 파리를 쪼아 먹고, 거드름을 피는 닭들을 구경하는게 즐거웠다.

몇달후 다시 제주도를 찾았을 때, 세마리의 닭은 십여마리로 넘게 불어나 있었다. 사실 병아리를 엄청 많이 낳았는데, 족제비들한테 좀 잡아 먹혔다고 한다.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 중대장님께서는 대원들에게 닭을 잡아 끓여보라고 하셨고, 닭잡는 법을 찾기 위해 네이버 지식인을 뒤지던 대원은 실행에 들어갔다.

닭을 두마리 집어 거꾸로 들고.. 목을 도마에 올려 놓고 칼날을 지긋이 누른 다음. 목을 옆으로 비틀었다... 그렇게 두마리의 닭은 순식간에 생명을 잃었다.

그때 내가 놀랐던 것은, 눈 앞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닭들이 숙연해졌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꾸꾸 거리던 이놈들이 숙연해지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들 역시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 역시 생명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잊고 있었다. 그냥 치킨 배달오면 포장 뜯어서 해치우기 바빴지, 너무 그들의 고통을 쉽게 외면하고 있었다.

아.. 근데 치킨집 얘기하다가 얘기가 너무 샜다.

요점인즉, 승진할 때도 됐으니, 빡시게 서무를 해서 승진을 하는게 좋지 않겠냐고 주위에서 다들 말씀을 하신다.

근데 그냥 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재밌고, 홍삼도 6년은 묵어야 약효가 나오는데 이제 5년 된걸 가지고 왜 다들 주위에서 난리인지 모르겠다.

맨날 프로경찰이니, 전문가니 말로만 외치면서.. 뭐 그리 적성에 안 맞는걸 이 악물고 하라고 권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이버가 전문 영역이니 한국 경찰의 미래이니 하면서도, 정말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윗분들 심기 불편할까 눈치 보기 바쁘고 알아서 기고...

조직이 이렇게 망가져서 맛이 가고 있는데도 찍소리 한마디 못하면서 '그럼 니가 얘기해봐...' 미루기 바쁘고..

그렇게 또 이쁘게 보여 높이 올라가면 장관 눈치 보고, 총리 눈치 보고 이러면서 사는건가?

그게 내 삶이 되어야 한다면, 난 그냥 우리 동네 치킨집 상권을 분석해야겠다. 그 안타까운 닭들의 슬픔을 이 악물로 외면한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