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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남섬 캠퍼밴 여행기

작년 블랙프라이데이 이벤트 때 콴타스 항공 프로모션을 통해 싱가포르->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싱가포르(호주에서 환승 포함) 티켓을 1인당 900싱가포르 정도에 구입했었다. 뉴질랜드 여행에 가장 좋은 2월이었는데, 여행 출발을 4-5일 앞두고 주짓수 스파링을 하다 안와골절을 입는 바람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치료를 위해 한국에 들어갔었다. 그때 취소불가 요금으로 결제하는 바람에 오클랜드 호텔 이틀치, 크라이스트처치 공항 호텔 하루치를 고스란히 날려 먹었고, 렌트카 위약금도 50뉴질랜드 달러 정도 날려 먹은것 같다. 

 

항공권을 취소하며 같은 금액의 바우처로 받았고, 이후 1인당 390싱가포르 달러 정도를 더 내고 싱가포르->크라이스트처치 왕복 티켓으로 변경을 했다. 결국 1인당 1200 싱가포르 달러에 티켓을 구매한 것이 된다. 이래저래 안와골절로 인해 한국을 2번 오가는 항공료와 의료비용, 항공 위약금 등 나의 뉴질랜드 여행은 꽤 비싼 여행이 되었다.

 

올해 2월이 지나 여행 계획을 다시 잡은 10월이 되며 바뀐 것이 있다면, 기존의 북섬-남섬을 모두 포함한 일정을 남섬으로 줄였다는 것, 계절이 가을 대신 봄이라는 것, 무엇보다 렌트카와 숙소를 이용하려는 계획이 캠핑카 여행이 된 것이다. 국내인들의 블로그에 캠핑밴에 대한 내용이 꽤 많이 올라온 덕분에, 모터홈리퍼블릭이라는 사이트를 타고 들어가 2인이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을 검색했다. 그냥 승합차 형태의 차를 알아볼까 하다가, 자칫 좁을 수 있고, 평생 마지막이 될지 모를 캠핑카 여행에 조금 더 좋은 차로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2명이 생활할 정도이면 되니 차 지붕에 뭐가 툭 올라와 추가 수면 공간을 제공하는 차량은 필요가 없었다. 다만 뉴질랜드라는 생소한 지역을 헤매는 도중 화장실이 급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화장실이 붙어 있는 큰 차를 선택했다. 다행히 뉴질랜드 곳곳에 작은 동네가 있고, 유럽과는 달리 화장실 민심이 좋고 깨끗한 덕분에 여행을 마칠 때까지 차량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일은 없었다. 심지어 관광지에 있는 외관이 허름한 화장실도 내부는 깨끗하다. 화장실 구조상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남들이 쏟아 놓은 배설물이 직접 볼 일은 없다. 뉴질랜드를 위대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훌륭한 화장실이다. 

 

2월달 안와골절의 교훈 덕분에 해지가 가능한 옵션으로 넣어 80뉴질랜드 달러 정도가 추가 되었고, 뉴질랜드 오지에서 뭔 일을 당할지 몰라 모든 것을 커버해주는 보험 옵션을 넣고, 히터 1대를 빌리고 등등 처음 결제할 당시 9백 10일 기준 1600 뉴질랜드달러 정도가 들었다. 이후 차량을 인수 받을 때 혹시 몰라 사고시 현지로 나와 지원을 해주는 옵션으로 40달러 정도를 더 냈고, 차량을 인계한 이후 2100킬로미터 주행 도로세 명목으로 150달러를 냈다. 

 

2300CC의 무거운 디젤차량이다보니, 10킬로에 1리터 정도 기름이 소요되었던 것 같고, 주유 비용으로 350달러 정도를 쓴 것 같다. 기름값이 동네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은 리터당 1.3-1.4달러, 웨스트코스트는 1.6-1.8달러, 와나카에선 1.8달러, 퀸스타운 1.6달러, 테아나우에선 1.6달러, 퀸스타운에서 테카포를 가던 도중에 들린 모스번(Mossburn)이라는 자그마한 동네에서 1.4달러 정도이다. 같은 도시내에서도 기름값이 다른데, 서울과 마찬가지로 도시 중심부에 땅값이 비싼 동네이면 기름값이 비싸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름 게이지가 2-3칸 떨어지면 틈틈히 주유를 해서 오지에서 차가 멈추는 불상사를 방지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주유소가 없는 밀포드 사운드 들어가기 전에 테아나우에서 기름을 꽉 채워주는 것은 차량 여행자들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구불구불 산길이어도 차의 성능이 좋은 덕분인지 운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전에 전경대 근무하고 트럭을 몰았던 경험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만, 퀸스타운이나 크라이스트처치 같은 도시를 다닐 때는 몇배로 더 신경을 써서인지 금방 몸이 피곤해졌다. 

 

캠핑사이트는 Holiday Top10이라는 곳을 주로 이용했는데, 50달러를 내고 2년짜리 멤버십을 가입하면, 캠핑사이트 이용 비용이 10% 할인이 되어 2인 기준 하루 비용이 45달러 내외이다. 테아나우에서 점심을 해결했던 Fat Duck이라는 레스토랑에서도 멤버십을 이용해 15% 정도 할인을 받았다. 시푸드 수프가 꽤 훌륭한 식당이었다. 그레이스마우스, 프란츠-조셉 빙하, 폭스 빙하, 퀸스타운, 크롬웰에서는 Top10 캠프사이트를 이용하였고, 와나카에서는 위치가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한 키위파크, Top10사이트가 없는 밀포드사운드와 테카포에서는 로칼 캠핑사이트를 이용했다. 캠핑사이트에 들어가 차에 전원을 연결한 후에는 히터도 틀 수 있고, 전기 매트도 쓸 수 있어 추위를 해결할 수 있었다. 캠핑 사이트 내에 취사 도구도 잘 갖춰져 있어서 열심히 고기를 굽고,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 먹었다.

 

뉴질랜드 공항은 검역이 까다롭다고 해서 영양제나 상비약조차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캠핑밴을 받은 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New World라는 곳에서 장을 본 후, Kosco라는 한인마트에서 라면, 김치, 김, 햇반 등을 잔뜩 담아야 했다. 퀸스타운에서 우연히 들린 Park and Save 라는 마트는 New World 보다 더 크고 물건도 싼 것 같았다. 퀸스타운 Park and Save에는 초록홍합을 팔아서 이것을 두번이나 사서 홍합탕을 끓여 먹었는데 이번 여행 최고의 식사가 되었다. 이곳에서 연어회도 사먹었는데 난생 처음 냉동되지 않는 신선한 회를 경험했고, 이후 푸카키 호수 인근에서 먹은 연어회도 미치도록 신선했다.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2명이서 10일간 와인 두병, 맥주 5병을 비우며, 우리 가정 1년치 주량을 주파했다. 

 

뉴질랜드 남섬 여행의 가장 큰 멋은 눈이 보는 그 자체이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출발해 설산을 보며 캐슬힐과 아서스패스를 지나 그레이스마우스를 향하는 횡단길은 다시 한번 기차로 감상해 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헬리콥터 투어로 본 프란츠조셉빙하와 폭스빙하는 나를 지구온난화 방지 홍보대사로 만들었고, 웨스트코스트를 달린 후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만난 와나카 호수부터 마지막 밤을 보낸 테카포 호수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원시의 모습 그대로였다(아마도..) 밀포드사운드로 넘어가는 길에 절망보다 더 높은 암벽을 보며, 이를 넘지 못해 낙심하는 대신 차곡차곡 18년간 땅을 파 터널을 만든 이들을 생각했다. 그냥 양떼, 소떼만 계속 나오는 시골길을 달려도 좋았다. 반지의 제왕을 본 후 프로도와 간달프가 걸었던 그 길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다. 

 

오늘 캠핑밴을 반납하고 크라이스트처치 시내로 돌아와 쓰러져 자다 일어나, 이런 기억들을 놓쳐버릴까 주섬주섬 글을 썼다. 이왕이면 영수증 하나하나 다 챙기고 사진도 올리며 파워블로거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지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이외에, 핸드폰의 사진을 옮긴다던가 자료를 주섬주섬 챙겨보는 것이 너무 귀찮다. 캠핑밴을 세운 후 저녁을 먹고 히터를 쐬며 차안에서 책을 읽으며 소확행을 확인했고, 아침에 눈 뜨면 일어나 창 밖의 설산과 호수를 보는 것이 평생의 일상이 되길 바랬다. 테카포 호숫가의 선한목자 교회에서 기도를 하며 평생 이리저리 글을 쓰며 떠돌 수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난 지금 그리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 평생 최고의 여행은 이전까지 이탈리아 도시 기행이었는데.. 이번 여행 후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