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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Born a Crime' by Trevor Noah

9월 초 마닐라 출장을 갔다, 보니파치오에 있는 Fully Booked라는 서점에 들렸다. 현지 통화를 쓸 일이 저녁밥 먹는 것 밖에 없어서 환전한 돈을 써야 했다. 결국 서점에서 집어든 책 2권이 Blake Crouch의 Recursion과 트레버 노아(Trevor Noah)의 'Born a crime'이었다. 

 

Recursion은 소설에 몰입되어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꿈을 꾸며 헤맬 지경이었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 그랬다). Born a crime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고(비참한 고백이지만, 책을 고르는게 참 힘들다), 남아프리카의 삶에 대해 궁금한 마음에 가볍게 고른 책이었다.Recursion을 후딱 끝낸 후에 읽기 시작한 Born a crime은 도입부터 짧고 간결한 문장에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트레버 노아는 남아프리카에서 Xhosa(코사라고 읽는것 같았음)족인 어머니와 스위스인 백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최악의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헤이트 덕분에 당시 흑인과 백인 사이에 자식을 갖는게 금지되어 있는 때였고, 저자의 부모는 혼인 신고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강직한 성품을 가진 그녀의 어머니도 아이를 가지며 그걸 감수하였다. 

 

트레버는 어렸을 때부터, 흑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밝고, 백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피부톤 때문에 항상 중간에 끼인 삶을 살게 되었다. 심지어 자신의 흑인 친구와 함께 감시 카메라 앞을 지날 때조차 렌즈조차 그의 피부를 하얗게 잡았다고 하니..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어머니를 따라 1주일에 4일은 교회를 갔는데, 그것도 백인 교회, 흑인 교회, 섞인 교회 3곳을 갔다. 책에는 각각의 교회에 대한 인상을 자세히 써놨는데, 아프리카 교회에서 퇴마를 하는 부분에 대한 묘사는 웃음을 터져 나오게 한다. 

 

280여 페이지의 책을 통해 저자는 차별과 편견이 왜 나쁜지 그만의 유머로 풀어 설명해 놓았다. 히틀러라는 사람이 6백만 유대인을 죽였다며 치를 떨지만, 아프리카 인들에게 그것은 유럽인들의 이야기일 뿐, 유럽인들 역시 아프리카 각지에서 수 많은 아프리카인을 죽이며 그 숫자조차 세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히틀러에 치를 떤다 한들, 그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문제일 뿐, 오히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죽음에 대해 비슷한 시선을 가져주는게 더 옳다는 그 주장에 동감하게 된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트레버 노아가 스탠딩 코미디로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넷플릭스에서 트레버 노아의 스탠딩 코미디도 찾아 봤다. 책장을 넘기며 끊임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냉소적인 유머 이면에는 가난하고 고단한 그의 어린 시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이 냉소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 살아온 삶의 반영이라면, 종종 삐져나오는 나의 냉소주의 역시, 그리울 것도 아름답게 묘사할 것도 없는 내 어린 시절의 반발이 아닌가 싶다. 

 

비가 오면 물이 넘어오고 곰팡이가 피던 어두운 지하방의 삶과 매캐한 냄새가 빠지지 않는 도시락 가방 속 신김치 국물이 흐르던 반찬통의 기억이 여전히 내겐 생각조차 하기 싫다. 내겐 전혀 결정권이 없었던 이혼과 재혼으로 만들어진, 가족간의 애정이라곤 쥐뿔도 없는 어색한 집단에서 9살부터 10여년을 살았고, 그놈의 술, 담배, 도박, 가정 폭력, 경제적 무능은 지금도 내 두뇌속에 짜증과 분노를 가득 뿜어내는 존재이다. 이혼이라는 사건이 있기 전부터, 어린 시절 내게 부부 싸움이라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죽도록 밟고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스무살이 넘어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 간혹 어른이 되어 그렇게 보고 느끼며 자란 것이 어느새 내 속에서 터져나오지 않을까 두려웠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린시절부터 줄곧 이 망할 놈의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다시 공정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고, 아마도 1990년대에 빨치산이 안산을 점령해서 홍위병을 모집했으면 제일 먼저 뛰어 나가 선봉의 붉은 깃발을 높이 휘둘르며, 총살 집행의 앞잡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몽상이 너무 현실성이 없다 느껴지면 차라리 사회 복지 시설에 들어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살면 지금보단 내 삶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좀 더 그럴듯한 판단도 했었고, 더욱 고달플 때는 종종 집안에 휘발유를 뿌린 후 불을 질러 다 죽어버리면, 내 삶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나 동정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예측도 해봤다.  

 

비행 소년이 될 법도 한데, 워낙에 돈이 없으니 아이들이랑 몰려 다니며 비행을 저지를 여유도 없고, 덩치도 작으니 일진이랑 몰려 다니며 삥을 뜯을 수도 없었다. 주말에 집에 붙어 있기 싫어 선택한 것이 교회 활동이었다. 교회에서 뭔 얘길 해도 곧이 곧대로 다 믿던 시절이라 난 신앙생활이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내 주요 기도 제목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결국 공부를 잘해야 하나님 당신도 좋고 빛나지 않겠냐며 집요하게 설득했던 것 같다. 사실 하나님 입장에서 아시아 변방의 어느 소도시의 작은 학교에서 전교 1-2등 나오는게 뭐 크게 신경 쓸 일이냐겠냐마는.. 

 

삶이 고달파 그것조차 얘기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울며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로뎀 나무 아래서 한 선지자가 말했던 것처럼, 차라리 나를 죽여 당신 곁으로 데려가 달라고 절박하게 얘기 했었다. 왜 그때 나는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 자살하면 천국에 못 간다는.. 별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주워 들은 영향이겠지.. 그 와중에 천국은 가고 싶었나 보다. 삶이 지옥이니 죽은 후에 지옥을 또 가는게 억울했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삶은 남루했지만, 난 그 초라함을 덮기 위해 남들보다 더 웃고 까불고 떠들었던 것 같다. 알랭드보통이 얘기한 것처럼 화려한 차를 모는 사람은 어딘가 결핍이 있기에 그것을 덮기 위한 방법으로 그것을 택한 것이라고.. 내 삶에는 웃음과 떠들썩함이 부족했기에 난 더더욱 그것들을 연출했던 것 같다. 덕분에 지금도 일상의 삶에서 와이프가 입술을 겨냥해 때릴 때까지 입이 쉬지 못하도록 종일 주둥이를 나불거리며, 끊임 없이 농담과 장난을 시도하는가보다. 트레버 노아 덕분에 다시금 내가 극복하며 살아온 삶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마음 속에 있던 불편함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