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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뭘 할 수 있을까?.. 영화 '다음 소희'

1. 2016년 말, 싱가포르 이사를 앞두고 엘지유플러스 인터넷 해지를 해야 했다. 약정 기간을 꽉 채운 후 2-3년 정도 더 쓰고 있던 상태이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줄 알았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해외 이주로 인해 인터넷 해지를 해야 한다는 말에 또 다른 약정 상품 가입, 할인 등을 권유 했다. 해외 이주하는 판에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다른 사람에게 양도를 할 수 없는지 물었다. 인터넷 서비스 하나 해지하는데, 뭐 이리 사람들 힘들게 하는 것일까? 영화 '다음 소희'를 본 후 그 이면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상담원은 나의 해지 요구를 방어하며, 본인 역시 자괴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지금은 뭘 하며 살고 있을까?

 

2. 소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후, 오유진 경감은 사건 현장, 콜센터, 교육청, 학교 등을 돌아다닌다. 모두들 벽에 정량 평가를 위한 도표를 보여주며 콜센터 실적, 학생 취업율로 자신들의 밥줄이 오간다는 얘기를 한다. 누군가는 나 같은 일개 지방 교육청 장학사가 뭘 할 수 있겠냐는 말을 한다. 직장 생활 18년차에 꽤 많이 들었던 패턴이다. 내 기억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일개 팀장, 계장, 과장, 국장.. 더 나가 청장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직원을 갈구거나 다독이는 것 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렇다. 

 

3. 영화를 보다 불연듯 아이를 안 낳고 딩크로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 역시 입시 경쟁에 밀려 실업계고를 갈 수 있고, 취업율 관리를 위해 본인의 전공과는 무관한, 그저 실습생 데려다가 싸게 일 시킬 수 있는 곳에 떠밀려 가서 소음 가득한 현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것이고, 거친 이들의 욕설과 폭행에 노출될 것이다. 이 나라에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은 내 아이를 위한 최고의 복지였던 것 같다. 신이 만들었다고 하기에 너무 부족한 이 세상에 태어나 살지 않게 한 것이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 실업계고에 발령난 교사들은 출근 첫날 1학년 학생의 자퇴서를 접수하기도 하고, 자녀 교육에 아무 관심 없는 학부모들을 달래서 학교에 불러야 하고, 아이들 역시 내 삶은 여기서 정해졌다는 것을 감수하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 빈틈을 메꾸고 챙기라고 만든게 학교이고 교육이고 정부인데... 일개 교사, 장학사, 국장, 장관 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4. 본청에서 사무직으로 살다 뭔가 안 좋은 일로 지방 경찰서로 밀려온 오유진 경감의 지친 표정이 너무 익숙했다. 경찰청에 근무하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결국 로스쿨 언저리를 기웃거리고, 혹은 그래도 살아보자고 버티는 미생들의 얼굴이 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하는 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고, 주먹을 날리고, 피해자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떨구는 그 모습이 내겐 또 다른 희망이었다. 조조할인으로 찾은 영화관에는 예닐곱명의 관객 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온기를 나눠줄 수 있길 바란다.